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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 학창 시절 단과 학급의 1등이 될 수 있었던 경험담

by 호모 ADHD 2025. 8. 16.

암기를 넘어 정보를 뇌에 때려박는 법

성인이 되어 깨달았다. 나는 아마 조용한 ADHD였을 것이다. 내 학창 시절을 관통하는 수많은 오해와 좌절의 원인이었다. 가족과 선생님은 내가 게으르거나 의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습 부진은 물론, 기복이 심한 성적은 그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사실 우리 집안은 소규모 시골 마을에서 꽤나 인정받는 편이었다. 친척 어른들은 물론, 누나들까지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들의 그늘 아래서 나는 늘 위축되어 있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았다. 수업 시간엔 딴생질을 하거나, 친구들과 떠들다 선생님께 혼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중학교 2학년 끝자락에 다다랐다.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현실이 갑작스러운 불안감, 나아가 공포로 다가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었다. 벼락치기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기초가 전무한 나에게 공부는 너무나 막막한 산이었다. 특히나 부족한 집중력은 그 산을 더욱 높고 험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운명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여름 방학이 시작될 무렵, 내가 가고 싶던 고등학교는 중학교 3학년 성적만 반영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거다!' 싶었다. 마침 도시에서 공부하던 누나와 함께 살면서 독서실이라는 곳을 처음 경험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독서실은 출근 도장만 찍다 기부만 한 채 끝나버렸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건 내게 너무 고역이었다.


나만의 공부법을 찾아서: 산책과 스케치북의 조합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독서실을 박차고 나와 나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답답할 때마다 동네를 산책하며 머리를 식혔다. 억지로 붙잡으려 했던 집중력이 흩어진 뒤에야 비로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나 집에서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며 나만의 공부 공간과 리듬을 만들어 갔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오히려 나에게 집중력을 선물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교과서나 문제집의 내용을 무작정 스케치북에 베껴 쓰는 것을 시작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일단 무조건 썼다. 인강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 받아 적었다. 효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듣고, 보고, 쓰고, 말하는' 이 모든 행위가 흩어지는 나의 주의력을 한데 모으는 놀라운 힘이 있었다.

뇌에 때려박는 공부법의 핵심:

  • 무작정 쓰기: 내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손으로 계속 쓰면서 정보를 시각, 촉각으로 각인시켰다.
  • 소리 내어 읽기: 썼던 내용을 다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청각을 활용해 또 한 번 정보를 입력했다.
  • 산책하며 암기: 외워야 할 부분이 있으면 스케치북을 들고나가 산책을 했다. 걸으면서 중얼거리며 외웠다.
  • 반복, 또 반복: 같은 내용을 적고, 풀고, 또다시 풀었다. 이해는 없었지만 반복을 통해 패턴을 익혔다.

이 방법은 중학교 3학년 내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깊이 있는 이해 없이도 비슷한 유형의 문제는 감으로 풀 수 있게 되었고, 정답 확률은 놀랄 만큼 높아졌다. 내신은 결국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반복하고 응용하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에, 나는 내신 시험을 마치 스포츠처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내신의 제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내신 1등급, 모의고사 하위권의 아이러니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이 공부법은 빛을 발했다. 비록 실업계였지만, 3년 내내 단과 학급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내신 성적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항상 하위권을 맴돌았다. 내신 1등급에 모의고사 하위권. 남들은 의아해하고 나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모의고사는 나의 공부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내 공부법은 당장 눈앞의 시험을 위한 것이었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탁월했지만, 광범위한 지식의 이해와 응용력을 요구하는 모의고사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의 주의력 분산은 다양한 과목에 적당한 흥미를 유발했고, 외우고 푸는 단순한 반복 행위는 나에게 놀이처럼 느껴졌다. 지식의 습득보다는 '문제 해결'이라는 놀이에 몰입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다. 지식을 진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고, 장기 기억으로 가져가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오직 '성과'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와 같았다. 미약하지만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고, 그것은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혹시 나와 비슷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거나, 그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위안과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부족했던 나였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그 치열한 과정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스케치북과 산책이 함께했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 이 순간 새로운 도전을 위한 든든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조용한 성인 ADHD의 두서없고 솔직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