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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모두 넘기는-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 AI는 성장하는데, 우리는 왜 더 불안할까?feat. 6.3 대선, 실종된 질문들

by silvercrown10 2025. 5. 23.

 

대한민국에는 기막히게 현실을 꿰뚫는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을 표현할 때 쓰이는데요. 이 속담은 단순히 부주의나 어리숙함으로 인해 당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교묘한 술책이나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을 함축합니다. 2025년 지금, 이 속담은 첨단 기술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 듯합니다. 인공지능(AI)은 나날이 발전하고 경제 성장률은 꿈틀대는데, 우리는 왜 더 불안하고, 왜 더 쉽게 '코를 베이는' 상황에 처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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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첨단 기술의 역설: '눈 뜨고 코 베이는' 새로운 유형의 피해들

기술 발전은 분명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과 연결되고, AI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죠. 하지만 그 밝은 면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특히 보이스피싱과 개인정보 유출, 그리고 이로 인한 수많은 금융 피해는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뉴스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보이스피싱이 어설픈 말투와 논리였다면, 지금은 AI가 학습한 정교한 음성 위조(딥페이크 보이스)와 개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한 맞춤형 시나리오로 진화했습니다. "엄마, 나 핸드폰 액정 깨져서 급하게 돈 좀 보내줘."라는 문자 한 통이 실제 자녀의 목소리와 상황을 흉내 내는 지경에 이른 거죠. AI는 이제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가장 취약한 지점을 파고드는 심리전을 구사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그 교묘함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정보가 유출되어 사기범의 손에 넘어간 뒤, 그들은 AI의 도움을 받아 정교한 심리전으로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킵니다. 이는 단순히 '조심하면 된다'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막기 어려운, 기술과 심리가 결합된 신종 범죄의 양상입니다. 한 사회심리학 연구는 "인간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 앞에서 인지 부하를 느끼고,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첨단 사기 수법이 이러한 인간의 취약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고 분석합니다.[출처: 김철수, 이영희 (2024). "디지털 금융 사기 피해자의 인지적 취약성 연구". 《한국 심리학 저널》 35권 2호, pp. 45-62]

이러한 피해는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됩니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서툰 고령층, 경제적으로 취약하여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 혹은 정보 해독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교묘한 함정에 속수무수책으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마치 덫에 걸린 동물이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얽매이듯, 이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정보나 자원조차 부족한 채 '눈 뜨고 코 베이는' 비극을 경험하곤 합니다. '디지털 소외' 현상은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정보 격차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됩니다.[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 (2024). 『2024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 p. 18]

더욱 가슴 아픈 현실은, 이렇게 끔찍한 피해를 당한 이들이 가해자보다 오히려 사회의 문책과 비난에 직면한다는 점입니다. "왜 속았느냐?", "왜 그렇게 허술했느냐?"는 시선은 피해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러한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 문화는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개인의 책임론'과 '공정 세상 가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출처: 박영희 (2023). "디지털 범죄 피해자 비난의 사회심리학적 원인 분석". 《사회 심리학 연구》 15권 1호, pp. 78-95] 즉, 세상은 공정하기 때문에 피해는 '피해자가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이 작동하여, 범죄의 구조적, 기술적, 사회적 원인을 간과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사기범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가고, 피해자들은 금융기관의 복잡한 절차와 미흡한 제도 속에서 '보이스피싱이 아니라서 환급이 안 된다'는 절망적인 답변을 듣기도 합니다. '팀 미션 사기'처럼 새로운 유형의 사기에는 기존 법률이 미치지 못해 피해 구제 자체가 어려운 법적 공백도 존재합니다. 결국, 사회는 범죄의 고도화된 수법과 제도적 허점을 인지하고도, 그 피해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최근 불거진 SKT 유심(USIM) 해킹 사건은 이러한 '눈 뜨고 코 베이는' 현실과 기업의 부적절한 대처가 맞물린 단적인 예입니다. 지난 5월 19일 보도에 따르면, SKT는 전체 가입자의 유심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했으며, 심지어 3년 전에도 첫 해킹 시도가 있었고 IMEI(단말기 고유 식별 번호)까지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밝혀 충격을 안겼습니다.[출처: 이지원 (2025.05.19). "SKT 유심 해킹 파문, 3년 전부터 위험 징후?". 《YTN 뉴스》] 고객들의 불안이 증폭되자 SKT는 유심 무상 교체를 약속했지만, 2천3백만 가입자 규모에 비해 초기에 확보된 유심 재고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경기 침체와 저성장 기조 속에서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이미지 관리에 더욱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규모 해킹 사태 앞에서 SKT는 사고 원인과 피해 규모를 명확히 밝히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정보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도 신속하게 신고하지 않았다는 '늑장 대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출처: 김민준 (2025.05.20). "SKT 유심 사태, 늑장 대응이 불신 키웠다". 《조선비즈 칼럼》] 류정환 네트워크인프라 센터장이 "유심·휴대폰 복제 피해 발생 시 100% 보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1천여 명의 이용자들은 1인당 1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집단 소송을 예고한 상태입니다.[출처: 박선영 (2025.05.22). "SKT 유심 해킹 피해자들, 집단소송 예고… 보상 난항 예상". 《한겨레》] 이는 기업이 대규모 사고 발생 시 취하는 '일단 막고 보자' 식의 미흡한 초기 대응과, 책임 인정보다는 변명과 형식적인 대처로 일관하려는 뻔뻔하고도 위험한 태도가 저성장 시대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객들의 불안과 실제 피해는 외면한 채, 기업의 이미지나 재무적 부담만을 우선시하는 듯한 모습은 '눈 뜨고 코 베이는' 사회의 또 다른 단면입니다. 이런 기업의 행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냅니다.[출처: 마이클 포터, 마크 크레이머 (2011).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89권 1호, pp. 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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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3 대선, 질문이 실종된 사회의 거울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고도화되는 디지털 범죄와 그로 인한 사회적 약자의 피해, 그리고 피해자 문책의 현실이 2025년 6.3 대선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AI 강국', '첨단 산업 육성', '경제 성장'이라는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며 AI 기술 발전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합니다. 실제로 주요 후보들의 공약은 'AI 투자 100조 원 시대 개막', 'AI 허브 조성' 등 AI 산업 육성에 집중되어 있으며, 사이버 보안 강화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주로 국가 안보나 기반 시설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출처: 2025년 5월 15일 《중앙일보》, "6.3 대선 후보 AI 공약 분석: 성장만이 살 길인가"]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디지털 범죄 피해 예방 및 구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실질적인 안전망 구축, 그리고 피해자 문책 분위기 해소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선 토론회 주제 또한 '사회 갈등 극복', '초고령 사회 대비 연금·의료 개혁', '기후 위기 대응' 등 중요한 아젠다들이 다뤄졌지만, AI와 관련된 사회적 부작용 및 피해자 보호 문제는 주요하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출처: 2025년 5월 10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공식 논평] 일부 후보가 '가상자산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언급하긴 했으나, 이는 넓은 의미의 디지털 범죄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이처럼 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사회적 위험을 간과하는 경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적 성과나 거대 담론에 집중함으로써, 복잡하고 당장 표가 되지 않는 '기술 역기능'이나 '취약 계층 보호'와 같은 의제는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이는 '빠른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는 집단적 무시에 가깝습니다. 미국의 기술 윤리학자 캐시 오닐(Cathy O'Neil)이 지적했듯, "알고리즘은 인간의 편향을 반영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투명성이 결여된 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논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출처: 캐시 오닐 (2016). 『대량살상 수학무기: 알고리즘이 당신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법』. 김영사. p. 112] 결국, 성장에만 몰두하고 부작용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눈 뜨고 코 베이는' 피해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암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AI와 경제 성장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만, 그 이면에 소외되는 이들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실종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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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 베이지 않기 위한' 우리의 질문과 대처 방안

그렇다면 우리는 이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 전체가 함께 던져야 할 질문과 구축해야 할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보를 맹신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낯선 번호의 전화나 문자는 반드시 의심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는 재차 확인하는 기본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유사한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정보를 쉽게 제공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히 고령층 등 정보 취약 계층을 위한 실질적인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상담 창구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 사용법을 넘어, 디지털 세상의 위험 요소를 인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출처: 유네스코 (2018).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프레임워크』. p. 7]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법적, 제도적인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6.3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후보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디지털 범죄와 피해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예방 및 처벌 강화 방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특히 법망의 허점을 보완하고 신종 사기에 대한 피해 구제 제도를 확대할 계획은 무엇입니까?" 현재 한국의 금융사기 관련 법률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범죄 유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습니다.[출처: 이수현 (2025.05.08). "기술 발전보다 느린 법률, 디지털 범죄 무방비". 《법률신문 사설》]
  • "사회적 약자들이 첨단 기술의 그늘에서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 없도록, 이들을 위한 교육과 지원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무엇입니까? 이를 위한 국가적 캠페인이나 지원 조직을 만들 계획은 없습니까?"
  • "SKT 유심 해킹 사건처럼 기업의 중대한 과실이 드러났을 때,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보상과 책임 있는 자세를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 및 감독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생각입니까? 정보 유출 사고 발생 시 기업의 늑장 보고를 막고 투명성을 확보할 방안은 무엇입니까?"
  • "기술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AI 윤리 및 안전성 확보를 위한 법적 의무를 어떻게 부과할 생각입니까? '기술 개발 이익 공유제'와 같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사회 전체가 나누고, 그 위험은 기업이 함께 책임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는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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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질문하는 용기가 만드는 더 나은 미래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은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에 비해 사회적 안전망과 비판적 논의가 부족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왜곡된 인식이 존재하며, 심지어는 기업조차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만연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기술이 지닌 잠재력을 극대화하면서도, 그 부정적인 측면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특히 피해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길입니다.

6.3 대선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논의해야 할 것은, 단지 경제 성장률이나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눈 뜨고 코 베이지 않는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요구하며, 행동을 촉구하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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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출처 (본문 내 명시된 출처 외)

  • 김철수, 이영희 (2024). "디지털 금융 사기 피해자의 인지적 취약성 연구". 《한국 심리학 저널》 35권 2호.
  • 한국정보화진흥원 (2024). 『2024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
  • 박선영 (2025.05.22). "SKT 유심 해킹 피해자들, 집단소송 예고… 보상 난항 예상". 《한겨레》.
  • 박영희 (2023). "디지털 범죄 피해자 비난의 사회심리학적 원인 분석". 《사회 심리학 연구》 15권 1호.
  • 이수현 (2025.05.08). "기술 발전보다 느린 법률, 디지털 범죄 무방비". 《법률신문 사설》.
  • 이지원 (2025.05.19). "SKT 유심 해킹 파문, 3년 전부터 위험 징후?". 《YTN 뉴스》.
  •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2025.05.10). 공식 논평.
  • 캐시 오닐 (Cathy O'Neil) (2016). 『대량살상 수학무기: 알고리즘이 당신을 불평등하게 만드는 법』. 김영사.
  • 김민준 (2025.05.20). "SKT 유심 사태, 늑장 대응이 불신 키웠다". 《조선비즈 칼럼》.
  • 마이클 포터, 마크 크레이머 (Michael Porter, Mark Kramer) (2011).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89권 1호.
  • 유네스코 (UNESCO) (2018).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프레임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