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설에서 국정 철학으로, '이재노믹스'의 진화
'이재노믹스(Lee Jae-myung-nomics)'. 오랫동안 이 용어는 한 정치인의 경제 철학을 분석하고 그 가능성과 리스크를 가늠하는 일종의 가설적 프레임워크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2025년 6월 4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취임식이 거행되면서 이재노믹스는 마침내 이론의 영역을 넘어 국가 경영의 구체적인 청사진으로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국민적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새 정부가 나아갈 방향을 ‘거대 담론’이 아닌 ‘국민의 삶’이라는 현미경으로 조준했습니다. 주요 언론들이 “이념을 넘어 실용으로, 국가 중심에서 국민 중심으로” [KBS 9시 뉴스, 2025.06.04.]라고 평가했듯, 국정의 핵심 키워드는 ‘민생’과 ‘안전’ 두 가지로 명확하게 제시되었습니다.
이 글은 과거 우리가 이론적으로 탐구했던 이재노믹스의 철학적 기반과 경제 모델이, 6.4 취임사를 통해 발표된 ‘민생·안전 최우선 4대 정책 방향’ 속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실용적으로 진화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는 새 시대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마주할 기회와 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도가 될 것입니다.
I. 새 정책 방향의 사상적 뿌리: 이재노믹스의 3대 철학
새 정부가 제시한 '민생·안전' 중심의 정책은 그 뿌리를 이재노믹스의 3대 철학적 기둥에 깊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국정 방향이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일관된 가치 체계 위에서 설계되었음을 시사합니다.
1. 대동세상(大同世上): '포용적 안전망'의 이상적 목표
'대동세상', 즉 모든 구성원이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라는 고전적 이상은 새 정부의 국정 비전에서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현대적 목표로 재해석됩니다. 이는 단순히 시혜적인 복지를 넘어, 강자의 독점을 제어하고 약자의 재기를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원리를 사회 시스템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취임사에서 강조된 "실패가 두렵지 않은 대한민국" [대한일보, 2025.06.04.]이라는 비전은, 바로 이 대동세상의 이상을 ‘촘촘한 사회 안전망’이라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분석됩니다.
2. 공정성(公正性): '민생 기반'을 떠받치는 핵심 가치
‘공정성’은 민생 안정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제시됩니다. 과거 이재노믹스가 강조했던 절차적, 분배적 공정성은 이제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은 투명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국가 제1의 가치로 격상되었습니다. 이는 불공정한 카르텔 혁파,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채용 비리 근절 등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 이어지며, 국민이 노력하면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공정한 규칙이 바로 서야만 경제 주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민생의 기반이 튼튼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그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3. 먹사니즘(Moksanism): '민생 우선주의'의 실용적 원칙
"국가의 존재 이유는 오직 국민의 삶을 지키는 데 있다"는 취임사의 한 구절은 이재노믹스의 실용주의 원칙인 '먹사니즘'이 국정 운영의 제1원리로 채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념 논쟁이나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지양하고, 오직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러한 실용주의는 때로는 진보적, 때로는 시장 친화적 정책을 유연하게 채택할 수 있는 배경이 되며, 모든 정책의 최종 평가 기준을 ‘국민 체감도’에 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됩니다.
II. ‘민생·안전 정부’의 4대 정책 방향과 그 심층 분석
6.4 취임사를 통해 구체화된 4대 정책 방향은, 위와 같은 철학적 기반 위에서 과거의 이론적 구상들을 현실의 언어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 첫째: 공정한 기회로 든든한 ‘민생 기반’ 다지기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여, 국민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의 사다리에 오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YTN 속보, 2025.06.04.]
이 첫 번째 메시지는, '공정성' 원칙을 민생 안정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합니다. 이는 단순히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을 넘어, 사회 전반에 만연한 기회의 불평등 구조를 혁파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 및 중소기업·소상공인 보호 강화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의 세제적 환수 강화 △교육 및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 해소를 위한 ‘기회균등위원회’ 신설 등이 핵심 정책으로 거론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이재노믹스의 핵심 전략이었던 '전환적 공정성장'의 논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불공정한 구조 자체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문제의식 아래, 구조적 개혁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야만 지속 가능한 민생 안정이 가능하다는 판단입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강력한 규제 개혁을 통한 시장 활성화가 우선”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한국경제, 2025.06.05.], 새 정부는 공정한 운동장 조성이 모든 경제 활력의 출발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 둘째: 국가 주도 혁신 성장을 통해 풍요로운 ‘미래 먹거리’ 확보하기
두 번째 방향은 '전환적 공정성장' 비전을 국가 발전 전략으로 구체화한 것입니다. 취임사에서는 "정부가 미래를 선도하겠습니다. AI, 바이오, 재생에너지 등 3대 미래 전략 산업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습니다." [KBS 9시 뉴스, 2025.06.04.] 라고 밝히며, 정부의 '선도자(Pioneer)' 역할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민간의 자율성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정부가 직접 리스크를 안고 미래 산업의 기반을 닦아 민간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적극적인 개입주의 노선입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미래전략위원회’를 설치하고, 10년간 100조 원 규모의 ‘미래산업성장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관치경제의 부활이나 재정 부담 심화, 민간 부문의 창의성 위축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상당합니다. [대한일보 사설, 2025.06.05.]
3. 셋째: 어떤 위기에도 무너지지 않는 ‘촘촘한 사회 안전망’ 구축하기
세 번째 방향은 '먹사니즘' 철학을 '기본사회' 비전으로 발전시켜, '안전'을 국가의 핵심 책무로 명시한 것입니다. "아프면 돈 걱정 없이 치료받고, 실직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국가의 역할을 소극적 구제에서 적극적 보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주거, 의료, 소득, 금융 등 국민 생활 필수 영역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전 국민 생애주기별 기본생활 보장’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합니다. 이 거대한 구상을 뒷받침하는 재정 철학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던 케인즈주의적 접근에 기반합니다. 과거 2024년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논쟁에서 보여주었듯, 정부가 직접 재정을 투입해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나아가, 막대한 재원 조달을 위해 전통적인 재정건전성 논리를 넘어설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논쟁적이었던 현대화폐이론(MMT)의 주장과도 일정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물론 정부는 국채 발행 최소화와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을 우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복지 확대 정책의 지속가능성은 임기 내내 가장 큰 재정적, 정치적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4. 넷째: 국민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민생 우선 정부’ 만들기
네 번째 방향은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약속으로, 강력한 국가 주도 정책이 독선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민주적 통제 장치입니다. 이는 과거 이론적 배경으로 탐구했던 '위키노믹스(Wikinomics)'의 참여와 협력의 가치를 국정 운영에 도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모든 정책은 국민의 목소리에서 시작해 국민의 평가로 완성될 것입니다." [미디어오늘, 2025.06.05.]
이 선언과 함께, 온라인 국민청원 시스템을 ‘국민 정책제안 플랫폼’으로 전면 개편하고,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 숙의토론회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적 합의를 기반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특히 생활 안전, 교통, 육아 등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듣겠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장 중심, 민생 우선’이라는 정부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론] 시험대에 오른 약속, 이론을 넘어 현실의 삶으로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이재노믹스'라는 이론적 탐구가 ‘민생·안전’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국정 철학으로 진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공정한 기회, 국가 주도 성장, 촘촘한 안전망, 소통 중심 국정이라는 4대 정책 방향은, 지난 시간 동안 치열하게 논의되어 온 철학과 비전이 집약된 실천적 청사진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거대한 약속을 어떻게 현실로 구현해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혁신 성장을 통해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그 과실을 공정한 기회와 기본적인 삶의 보장으로 연결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강력한 국가 리더십이 민주적 참여와 조화를 이루며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가 새 시대의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이론은 이제 현실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재노믹스의 최종 평가는 정책 보고서의 수치가 아닌, 매일 아침을 맞는 국민의 삶이 과연 어제보다 더 희망차고 안전해졌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내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