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튜링이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제안했던 튜링 테스트는 한때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이정표처럼 여겨졌다. 기계가 인간과의 대화에서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사고하는 존재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였다. 현대에 와서, AI는 단순한 언어적 모방을 넘어 인간의 창의성 영역에 도전하고,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작 튜링 테스트 이후의 현실은 AI가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고도화되는 만큼, 인간은 알 수 없는 조급함 속에서 '기계처럼'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이 글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의사소통과 직업의 의미 변화, 새로운 형태의 관계로서의 AI 관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아들러 심리학의 관점을 통해 조명하며, 끝없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AI형 기계를 따라잡으려는 인류의 노력과 그로 인한 조급함, 그리고 소수의 창의적 인류와 다수의 생산성 인류가 마주한 질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1. 인간처럼 되려는 AI의 진화: 모방을 넘어선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
현대 AI는 더 이상 단순한 계산기나 정보 검색 도구가 아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기반으로 하는 AI는 인간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등 과거에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일들을 수행한다. 이러한 AI의 발전은 '인간처럼' 보이는 것을 넘어, '인간과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AI는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학습하고 모방한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문맥을 이해하고, 감정을 추론하며, 유머나 공감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의사소통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정보 교환의 측면에서는 AI가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본질적 요소인 관계 형성, 신뢰 구축, 미묘한 비언어적 신호의 이해 등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있는가, 아니면 AI가 이러한 영역마저 부분적으로 대체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소통 방식을 창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한다.
더 나아가, AI는 '관계'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있다. AI 챗봇이나 가상 비서와의 상호작용은 단순한 도구 사용을 넘어 정서적 지지나 심지어는 '친구' 혹은 '연인'과 같은 관계처럼 느껴지게끔 설계되기도 한다. 이는 '대인관계를 넘어선 AI 관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인간 관계에서 오는 복잡성, 갈등,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AI와의 관계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가 인간의 근본적인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혹은 오히려 인간 관계로부터의 고립을 심화시키거나 인간의 정서적 발달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새로운 고민을 던진다. AI와의 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인가, 아니면 고도로 정교한 시뮬레이션에 불과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관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2. 기계처럼 되려는 인간의 조급함: 생산성 경쟁의 덫
한편,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에 도전하며 '인간처럼' 진화하는 사이, 인간은 알 수 없는 조급함 속에서 '기계처럼'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특히 직업의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AI가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빠르게 대체함에 따라, 인간은 기계와의 생산성 경쟁에 내몰린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적은 오류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전력이 공급되는 한 아프지도, 지치지도 않고, 학습 데이터의 양이 늘면 늘수록 생산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는 AI형 기계 앞에서 인류는 극심한 조급함을 느낀다. 인간은 휴식이 필요하고, 병에 걸리며, 감정 기복에 시달리고, 학습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한계는 끝없이 발전하는 AI의 능력과 비교될 때 열등감과 불안감을 야기한다. 이 조급함은 인간 스스로를 데이터화하고, 정량화된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며, 감정을 억누르고 효율성만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마치 인간이 스스로를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기계'로 재설정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 사회에서 직업의 의미마저 변화시킨다. 직업이 자아실현이나 사회 기여의 수단이 아닌, 단순히 '기계보다 더 나은 생산성'을 증명해야 하는 생존의 장으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 있다.
3. 아들러 심리학과 기시미 이치로의 통찰: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 있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조급함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아들러 심리학, 특히 그의 핵심 사상인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 있다"는 통찰은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기시미 이치로가 『미움받을 용기』 등 자신의 저서에서 명확히 설명하듯, 아들러에게 인간의 고민과 고통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겨나고, 인정 욕구는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AI 시대의 조급함 역시 이러한 인간관계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기계처럼 생산성 경쟁에 매달리는 이유는 기계 자체와의 경쟁이라기보다는, 그 기계가 제시하는 효율성의 기준에 따라 타인(동료, 상사, 사회 전체)에게 평가받고 비교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즉 '인간관계' 속에서의 자신의 가치 상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AI가 수행하는 업무를 인간이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에게서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질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과제 분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나의 과제가 아니라 타인의 과제이다. 내가 기계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타인이 나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AI 시대의 조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계와의 생산성 경쟁이라는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과제' 즉, 나 자신의 행복과 성장에 집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아들러/기시미의 메시지는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인간이 기계처럼 되려는 노력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라면, 이 투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일 수 있다. AI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AI가 제공하는 편리함이나 위로에 기대는 것은 인간 관계의 어려움에서 도피하려는 시도일 수 있으며,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간 관계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4. 생산성 인류가 마주한 질문: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AI의 압도적인 생산 능력 앞에서 인류는 두 갈래 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에는 AI를 도구로 활용하여 인간 고유의 창의성, 복합적 사고, 깊은 공감 능력 등을 발휘하는 소수의 창의적 인류가 있다. 이들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인간적인 유대와 의미를 탐구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에게 AI는 협력자이자 조력자이며, 인간 능력의 확장을 돕는 존재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 그리고 아마도 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생산성 인류는 AI가 가장 잘하는 생산성 영역에서 AI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거나, 혹은 AI가 제시하는 효율성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업무 방식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들은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을 추구하거나, 혹은 기계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묘한 판단이나 고객 응대 능력에 매달려야 한다. 이들에게 오는 조급함과 불안감은 실로 엄청나다.
생산성 인류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의문은 여기에 있다. 기계처럼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삶의 목적인가? AI와의 무한 경쟁 속에서 인간은 결국 기계의 하위 호환이 되거나, 혹은 기계가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효율성에 자신의 삶을 맞춰야 하는가? 아들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조급함은 공동체 감각의 부족, 즉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의 부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생산성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결국 타인과의 경쟁에서 오는 고립감을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생산성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를 따라잡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만큼이나,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생산성 외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관계 맺는 능력,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 윤리적 판단 능력, 미적 감수성,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능력 등, AI가 아직 온전히 모방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들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가치를 생산성 지표가 아닌, 이러한 인간적인 자질들에서 찾을 때, 비로소 AI 시대의 조급함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인간다움의 재발견
튜링 테스트 이후의 현대 사회는 AI가 인간처럼 되려는 노력과 인간이 기계처럼 되려는 노력이 기묘하게 교차하는 시점이다. AI의 발전은 의사소통, 직업, 관계의 의미를 재정의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으며, 아들러 심리학이 통찰하듯 이 모든 변화는 결국 인간관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AI의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은 인류에게 엄청난 조급함을 안겨주었고, 이는 다수의 생산성 인류를 기계와의 무의미한 경쟁으로 내몰 위험에 처하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다움'을 구성하는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생산성 경쟁에 매몰되어 기계처럼 되려 할수록, 우리는 인간 고유의 강점인 창의성, 공감 능력, 관계 맺는 능력, 그리고 불완전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가 말하는 '미움받을 용기'는 AI 시대에도 유효하다. 기계처럼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인간적인 가치에 집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용기야말로 AI 시대에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튜링 테스트 이후의 풍경은 AI가 인간을 얼마나 잘 모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AI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인간다움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생산성 인류가 마주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 인간만이 맺을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데 있을 것이다. AI는 강력한 도구이자 거울로서 우리 앞에 서 있지만,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계의 형상을 쫓을 것인지, 아니면 인간 본연의 모습을 굳건히 지켜낼 것인지는 오롯이 우리 인류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