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인의 '운'과 한 세대의 실존적 질문
2025년 5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로 쏠렸습니다. 매년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워렌 버핏은 자신의 성공과 '운'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자신이 7~8세라는 어린 나이에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았던 것은 큰 행운이었으며, 모든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로 꼽히는 그가 성공의 한 부분을 '행운적 발견'으로 돌린 것은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열정과 직업, 그리고 그 안에서 '운'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버핏의 이러한 인식은 그가 경험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 성장기에 활동하며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던 세대와 달리, 오늘날 청년들은 교육 인플레이션, 경직된 노동 시장,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버핏에게 '운'이 소명을 일찍 발견한 것이었다면, 현대 청년들에게 '운'은 열정을 찾는 것을 넘어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기회를 얻는 것 자체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버핏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운이 따를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질문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과 성공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한 현대 청년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과거 NEET족 문제부터 최근의 '쥐인간' 현상, 아시아 고학력자들의 미래 불안으로 인한 회피적 미취업, 한국 사회의 '쉬는 청년' 증가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이 마주한 도전적인 현실은 이 질문에 더욱 절박한 무게를 더합니다. 이 글은 버핏의 통찰을 빌려, 이 시대 청년들이 '좋아하는 일'과 '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헤쳐 나갈 수 있을지 탐색하고자 합니다.
1. 워렌 버핏의 '운' 해부: 열정, '자궁 로또', 그리고 삶의 설계
워렌 버핏은 자신의 성공 요인을 설명할 때 종종 '자궁 로또(Ovarian Lottery)'라는 개념을 언급합니다. 이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출생의 조건 – 시대, 장소, 환경 – 이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입니다. 버핏 스스로도 자신이 백인 남성으로, 상대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호황기에 투자할 능력과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우연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운'은 단순히 열정을 일찍 발견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 바탕에는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선천적이고 환경적인 이점들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버핏은 '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삶 전체가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엄청난 헌신, 끊임없는 학습("매일 500페이지를 읽어라"), 그리고 전략적인 선택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느끼는 직업을 찾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하며, 독립적으로 부유하다면 선택했을 직업을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어린 시절 보험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직접 GEICO의 문을 두드렸던 일화는 그가 수동적으로 운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회를 탐색하고 만들어나갔음을 보여줍니다.
버핏은 종종 투자와 인생을 '눈덩이'에 비유합니다. 그는 "제대로 된 눈밭에 있다면 눈덩이는 저절로 굴러간다... 눈덩이를 굴리면서 계속 눈을 붙여나가야 한다"고 말하며, 초기의 '운'(좋은 눈밭을 만나는 것)이 지속적인 노력(눈을 계속 붙여나가는 것)을 통해 복리적으로 성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눈덩이 효과'는 금융 자본뿐만 아니라 '열정' 그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발견한 열정의 씨앗이 좋은 환경과 만나고, 여기에 꾸준한 노력과 학습이 더해지면서 그의 열정은 수십 년에 걸쳐 투자처럼 복리적으로 성장하여 엄청난 성취와 만족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경제적 환경이 마치 눈사태처럼 느껴지는 청년들에게는 이 '제대로 된 눈밭'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2. 청년 불안의 풍경: 열정이 아득한 해안선처럼 느껴질 때
NEET족의 그림자와 고학력 NEET의 역설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는 교육, 고용, 훈련 중 어느 것에도 참여하지 않는 청년층을 지칭하는 용어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2023년 10월 기준, 한국의 15~29세 NEET 인구는 41만 명에 달하며, 다른 통계에서는 2020년 기준 15~29세 청년의 약 20%가 NEET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국 NEET 현상의 두드러진 특징은 '고학력 NEET'의 비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국내 NEET 청년의 45%가 대학교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OECD 평균인 18%를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며, 노동 시장의 경직성과 안정적인 대기업 일자리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쥐인간' 현상과 아시아 고학력층의 불안
2025년 들어 중국에서는 기존의 '탕핑족(드러눕기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쥐인간(老鼠人, Rat People)'이라 칭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과도한 업무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적 교류를 피한 채 집안에 은둔하며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거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등 극단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는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사회적 압박으로부터의 도피이자 소극적 저항의 한 형태로, 더욱 깊은 무력감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쥐인간'이라는 용어는 이처럼 특정 현상을 넘어, 현대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과 압박감을 드러내는 문화적 은유로도 사용됩니다. 이는 끝없는 '쥐 경주'에 내몰리면서도 보상은 불확실하다고 느끼는 청년들의 감정, 즉 비인간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높은 학력을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회피적 실업'이나 하향 취업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자의 73.3%가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지만, 정작 졸업 후에는 적합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회피적 실업'은 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실제 기회 간의 심각한 불일치를 드러냅니다.
한국의 '쉬는 청년': 심화되는 이탈 현상
'쉬는 청년'은 일할 능력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2025년 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쉬는 청년'은 5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이들이 '쉬는' 이유로는 적합한 일자리 부족, 교육 및 자기계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움 등이 꼽힙니다. 이러한 '쉼'의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청년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은둔하게 될 위험이 커집니다.
NEET, '회피적 실업', '쉬는 청년' 현상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교육-기회 불일치'입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가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자체를 흔들어 버립니다.
3. 운을 기다리는 것을 넘어: 도전적인 세상에서 기회 일구기
불안의 시대, 버핏의 지혜에서 찾는 주체성 회복의 실마리
현대 청년들이 처한 어려움 속에서도 워렌 버핏의 원칙들은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내가 '능력 범위(circle of competence)'라고 부르는 것 안에 머물러라"는 조언은 당장 거창한 열정을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통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데서 온다"는 말은, 어려운 시장 상황일수록 적극적인 학습과 참여가 덜 위험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한, "시간을 통제해야 하며, 그러려면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원칙은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기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버핏의 "정말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모든 것에 '아니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 삶의 의제를 설정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는 조언은 '쉬는 청년'이나 '회피적 실업' 상태에 있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원치 않는 일자리나 사회적 압력에 대해)은 어쩌면 더 나은 것을 기다리기 위한 필사적인 자기 보존 행위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주체성과 구조적 장벽 사이의 균형 찾기
개인의 노력과 주체성이 중요하지만, '교육 인플레이션', 노동 시장 경직성, 혹은 '좋은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조건이 적대적일 때, 스스로 운을 만들거나 우연한 기회를 설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질문은 이중적 접근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버핏이 보여준 개인의 적극성은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열정과 기회가 만날 수 있는 더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적 변화 또한 절실합니다.
동아시아 청년들의 공통된 고민과 각기 다른 저항의 모습
한국 청년들의 불안과 대처 방식은 동아시아 전반의 광범위한 추세의 일부이며, 높은 경쟁, 경제적 어려움, 전통적인 성공 지표의 달성 불가능성이라는 유사한 압력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한국의 N포세대, 중국의 탕핑족,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히키코모리 현상은 '성공'과 '열정'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 청년 운동은 기존 시스템이 정의하는 성공의 외부 혹은 그에 대한 저항 속에서 의미나 생존을 모색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들에게 '운'이란 막대한 부나 지위가 아니라, 평화나 지속 가능성을 찾는 것일 수 있습니다.
4. 결론: 의미 있는 일을 향한 여정 –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과제
워렌 버핏이 어린 시절 '운' 좋게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 이야기는 분명 영감을 주지만,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한 길은 훨씬 더 복잡한 구조적 장애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운'이 성공의 주된 결정 요인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청년들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으며, 버핏 자신의 삶에서 드러나는 주체성의 힘과 신중한 선택의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의미 있는 일에 대한 현대적 탐색은 유사한 개인적 자질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젊은 세대를 체계적으로 불리하게 만들거나 환멸에 빠뜨리지 않는 사회적 맥락을 필요로 합니다. 개인은 회복탄력성, 호기심, 적응력을 키워나가야 하지만, 사회 또한 구조적 실업 문제 해결, 교육 개혁, 유연하고 공평한 노동 시장 조성, 다양한 형태의 성공을 존중하는 문화 육성, 사회 안전망 및 정신 건강 지원 제공 등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에게 '열정'이란 평생을 바칠 단 하나의 거창한 소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더 파편화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의미, 안정, 혹은 몰입의 순간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일 수 있으며,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일 바깥에서 열정을 추구하거나 다양한 관심사에 부합하는 여러 '긱(gig)'들을 연결하는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과제는 청년들이 '하나의 열정'을 찾도록 돕는 것을 넘어, 열정과 일이 보다 복잡하고 덜 단일한 관계를 맺는 세상을 항해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한 세대에게 가장 큰 '운'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열정을 찾고 추구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의미 있는 일의 발견이 순전한 우연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열망이 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