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역설, 운전면허 없는 삶의 시작
20대 초반, 또래보다 다소 늦은 나이에 ‘편의’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는 특정 부분에 대한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것은 바로 운전면허 시험 도중 운전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으니 생각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수능을 마치거나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자마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관례처럼 자리 잡았고, 대학에 입학하자 운전면허는 마치 당연히 갖춰야 할 자격처럼 표준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표준 이하'의 그룹에 편입되었다. 방학 기간 동안 알바 중 시간을 조율하며 면허를 따려 했으나, 시험 감독관은 나의 특유의 집중력 부족과 불안정한 운전 패턴을 주시하며 운전을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조언을 건넸다. 운전이라는 반복적인 행위 중에도 딴생각에 잠기거나 주변 경관에 시선을 빼앗겨 집중력을 잃는 모습, 그리고 경미한 ADHD 증상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때로는 공황 상태와 유사하게 다가오는 경험은 나 스스로에게도 '과연 내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 옳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 당시에는 그 제안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운전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뚜벅이로 살면 되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뚜벅이’의 길, 사회적 제약과 기회 박탈
그러나 그 안일한 생각은 곧 '표준 이하의 삶'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운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제약을 동반했다. 직장 생활과 사회 생활 전반에서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때로는 불필요한 오해와 노골적인 무시를 야기했으며,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잠재적인 '살인자'가 될 수는 없다는 윤리적 판단 앞에서 나는 운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서울에서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괜찮았다. 운전의 중요성이 크지 않은 직업군을 선택하고, 그에 따르는 개인적인 불편함은 스스로 감내하면 되는 문제였다. 서울의 잘 갖춰진 대중교통 인프라는 '뚜벅이'의 삶에 큰 위안이 되었다. 비록 왕복 2~3시간에 달하는 긴 통근 시간이었지만, 대중교통의 편리함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제주 귀향 후, 가중된 불편함의 무게
하지만 제주도로 귀향한 후, '뚜벅이'로서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가혹하게 다가왔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왜 운전을 못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도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제주도의 특성상, 무엇 하나를 처리하는 데 남들보다 2~3배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이는 압도적인 효율성 저하로 이어졌다. 현재 거주하는 지역은 배달 앱 서비스조차 거의 이용할 수 없는 곳이며, 버스 노선 또한 배차 간격이 길어 한 번 놓치면 때로는 30분 이상을 땡볕에서 기다려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했다. 나의 일과는 버스 시간에 맞춰 짜여야 했고,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돌아오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쿠팡의 도입으로 온라인 쇼핑의 편의성은 증대되었지만, 추가 배송비와 제외 상품 목록은 선택의 폭을 현저히 줄였다. 그럴 때마다 "아, 운전만 할 수 있었다면"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초적인 삶의 불편함은 20대 타지 생활을 통해 이미 체득된 것이었기에 견딜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진정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운전을 하지 못하는 뚜벅이'라는 이유로 각종 업무에서 배제당하는 경험이었다. 괜찮다 싶은 일자리가 있더라도 자차 운전이 필수 조건이 되어 지원조차 할 수 없거나 면접 단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도 역시 특정 지역에 일자리가 밀집되어 있어 출퇴근 거리가 상당했지만, 서울처럼 잘 갖춰진 대중교통 시스템은 부재했다. 그렇다고 제주도의 버블 부동산으로 인해 서울과 맞먹는 집값을 감당하며 직장 근처에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 또한 현실적인 제약이었다.
불편함 속에서 찾은 삶의 태도: ‘불편함을 즐기자!’
결국 나는 이 지역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20대 타지 생활에서 항상 되뇌었던 한 줄의 생활 패턴, 즉 "불편함을 즐기자!"라는 마음가짐이 다시금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그러던 중 최근 한 권의 책을 읽게 되면서 내가 겪는 불편함이 어쩌면 진정한 불편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순록 사냥이 이루어지는 오지에서의 생활에서 얻은 통찰, 불편함과 지루함을 다룬 그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나의 고민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경험하는 불편함은 단지 타인과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인, 그리고 효율성 측면에서의 작은 불편함에 불과했다.
진정한 편안함에 대한 성찰: 달리기, 순수한 야생성
그 책의 저자가 바라보는 진정한 '편안함'은 삶 그 자체에 있었다. 때로는 '나의 삶은 왜 이토록 고생길인가'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불편함은 '불황'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와중에도 '선진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편안함' 속에 내재된 지극히 작은 불편함이었다. 오늘은 이 책을 통해 '뚜벅이'로서의 삶이 주는 불편함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해보았다. 내일은 이 책에서 얻은 생각들을 머릿속에 담고 달리기를 하며 사유해볼 작정이다. 이 '편안함'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내가 유일하게 스스로를 '불편함' 속에 던져 넣을 수 있는 행위인 '달리기'. 인간이 가진 가장 순수한 '야생성' 속에서 진정한 편안함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