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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라고 불렸던 아이: 30대 성인 ADHD, 놓쳐버린 시간을 되찾는 방법, 도서 환자혁명, 메타인지

by 호모 ADHD 2025. 8. 15.

 

어린 시절, 저는 '3초짜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한 가지에 3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곧바로 다른 것에 관심을 빼앗기는 아이. 선생님은 늘 "산만하다",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하셨고, 부모님은 그저 제가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하셨죠. 학교 성적은 늘 중하위권을 맴돌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잦은 실수로 서투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좀 엉뚱하고 산만한 아이’ 정도로 여겨졌던 이 모습들이, 30대가 된 지금, 제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놓쳐버린 시간, 성인 ADHD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다

직장 생활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회의 내용을 놓쳐 중요한 업무를 누락하거나, 잦은 마감 기한을 어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동료들은 저를 ‘대충 일하는 사람’으로 오해했고, 저는 결국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직을 거듭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단순히 ‘학습 부진’으로 끝났던 문제가 성인이 되어서는 저의 커리어를 통째로 흔드는 무거운 핸디캡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제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접하게 된 성인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라는 키워드. 제 어린 시절의 모습부터 현재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이 이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순간, 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제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증상 억제는 또 다른 함정

처음에는 병원을 찾아 약물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약을 복용하니 신기하게도 집중력이 좋아지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약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면서 점차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건가?', '결국 내 자신을 약에 가두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단순 증상 억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어린 시절, 제가 산만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어른들은 '가만히 있어라', '집중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일종의 증상 억제였습니다. 그 억압된 에너지와 산만함은 잠시 숨겨졌을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성인이 된 지금 더 큰 폭발력으로 제 삶을 뒤흔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환자의 혁명: 메타인지를 통한 자기 인식의 전환

이 시기에 저는 '환자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병의 객체로서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환자'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메타인지 훈련이었습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지금 내가 왜 이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지?", "왜 갑자기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을까?"와 같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 감정과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저를 '산만한 나'가 아닌 '산만한 특성을 가진 나'로 받아들이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창의성과 빠른 사고력 같은 잠재적 강점으로 전환하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무분별하게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연습을 했습니다.


3초 아이에서 4초, 5초,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이제 저는 약에 의존하기보다, 제 삶의 루틴을 만들어 스스로의 집중력을 길러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은 달리기입니다. 처음에는 5분도 버거웠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달리다 보니 10분, 20분, 30분… 조금씩 시간을 늘려갈 수 있었습니다. 달리기라는 단순한 행위에 집중하는 시간은 저에게 '나도 무언가에 꾸준히 집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제 삶의 역사를 다시 읽고 쓰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3초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저와 화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제가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입니다.


나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계속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는 어쩌면 3초 안에 또 다른 생각에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더 이상 저를 ‘3초 아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테니까요. 어제보다 1초 더, 그리고 또 1초 더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위해 오늘도 저는 읽고, 쓰고, 달립니다. 이 글이 혹시라도 과거의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작은 용기이자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매지만, 결국 우리를 위한 정보에 집중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놓쳐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환자혁명, 조한경
환자혁명, 조한경, 에디터유한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