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격변하는 사회 상황을 마주하며, 문득 10년 전 방영했던 한 드라마가 떠올라 정주행을 시작했습니다. 고려 말 혼돈의 시대를 배경으로 새로운 나라를 꿈꿨던 '육룡이 나르샤'.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놀랍도록 겹쳐 보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적인 욕망, 이상적인 사회 건설의 어려움, 그리고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며, 특히 다가오는 선거 민주주의와 함께 감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드라마 속 무명(無名)의 사상, 이익 추구의 삶, 그리고 조직 박멸의 한계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과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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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에 대한 무관심: 편안함 뒤에 숨겨진 대가와 책임
무명(無名)이 추구했던 '세상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무극의 세상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일지도 모릅니다. 복잡한 정치, 사회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삶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무관심은 살기 쉬운 길입니다.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에 눈 감으면 당장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개인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이익이나 불편함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에, 혹은 잘못된 목소리가 나에게 돌아올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관심을 접게 됩니다.
그러나 '육룡이 나르샤'가 보여주듯, 세상일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강자들의 욕망이 무제한으로 발현되는 환경을 만듭니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과 부패가 민초의 삶을 파탄 냈던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도 정치적 무관심은 소수 기득권의 배를 불리고 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곧 불편함과 책임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주저하게 됩니다. 인간의 욕망과 사회 참여의 관계에 대한 심도 깊은 고찰은 『욕망의 철학, 내 삶을 다시 채우다』(2024)와 같은 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왜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지, 그리고 그 욕망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하며, 무관심 역시 일종의 욕망 회피 혹은 소극적 안정을 추구하는 욕망의 발현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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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추구와 부동산 문제: 끝나지 않는 계민수전의 꿈, 자본주의 속 우리의 자세
드라마 속 정도전의 '사전혁파(私田革罷)'와 '계민수전(計民授田)'은 소수의 이익 독점을 막고 다수의 민생을 안정시키려 했던 이상적인 개혁이었습니다. 드라마의 배경인 고려말의 혼란과 새로운 나라 건설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통찰은 『해동 육룡이 나르샤』(2015, 이상우 저)와 같은 관련 서적을 통해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고려 후기 혼란이 단순히 왕조의 부패를 넘어선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음을 보여주며, 정도전의 개혁이 단순한 개인의 이상이 아닌 시대적 요구였음을 강조합니다.
현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는 이러한 인간 본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투기 세력의 등장과 불평등한 부동산 시장은 대다수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와 경쟁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효율성과 혁신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부의 불평등 심화라는 그림자 또한 드리웠습니다. 『한국의 불평등』(2013, 신광영 외)과 『다중격차, 한국 사회 불평등 구조』(2018, 김수행 외)와 같은 연구서들은 한국 사회의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단순히 소득 격차를 넘어 자산, 교육, 노동 시장 등 다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상세히 분석하며, 부동산 문제 역시 이러한 복합적인 불평등 구조의 핵심 요소임을 지적합니다.
정도전의 '계민수전'과 같은 파격적인 개혁은, 사유재산 철폐와 계급 투쟁을 주장했던 마르크스주의나 이를 실현하려 했던 레닌주의와 같은 사상적 공간 속에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그와는 반대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민수전'처럼 전면적인 재분배는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이익 추구만을 쫓는 시장 원리를 넘어선 공정한 분배와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는 단순히 개인의 이익만을 쫓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공정성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2022, 사이토 고헤이)는 현대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환경 파괴와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비판하며, 무한한 이윤 추구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기후 위기 등의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합니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강화하며, 탐욕스러운 투기를 규제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그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는 과거의 실패를 통해 배우고,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는 지혜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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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박멸의 어려움과 인간 욕망의 굴레: 민주주의의 한계인가?
'육룡이 나르샤'에서 무명(無名)과 같은 기득권 조직이 끊임없이 개혁 세력의 발목을 잡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무리 강력한 의지를 가진 개혁가들이 나타나도, 기존의 불의한 조직을 완벽하게 박멸하기 어려운 것은 결국 '사람이 모인 사람에 의한 삶 속에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권력과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어떤 조직이든 간에 그 존속과 확장을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32년 저술, 2018년 번역판 기준)은 이러한 권력과 욕망의 냉혹한 본질을 통찰하는 고전으로, "인간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위험을 회피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다"고 주장하며 지배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비도덕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권력 투쟁 양상을 이해하고, 불의한 조직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외치고 발전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여전히 하나의 '꿈'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이상으로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불평등과 불균형을 야기하려 합니다. 달콤한 권력과 부의 유혹 앞에서 인간은 쉽게 변질될 수 있으며, 이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어록처럼, 과거의 실패를 잊는 순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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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대의 역설과 약자의 시험대: 선거와 감시 민주주의의 중요성
"태평성대라는 것은 강자를 가둬두는 행위"라는 말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정은 강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과 제도를 악용하고 타인을 억압하는 것을 통제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즉, 강자의 무분별한 욕망을 법과 도덕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이 태평성대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제기됩니다. 약자가 힘을 가졌을 때, 그 약자가 과거의 고통과 어려움을 잊지 않고 달콤한 권력과 부의 맛을 외면할 수 있을까요? 역사는 종종 약자가 권력을 쟁취한 후 과거의 강자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비극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꿈꾸었던 재상 중심의 이상적인 국가가 이방원의 왕권 강화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은, 이상과 현실, 그리고 권력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변모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수많은 후보들이 공약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약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각자의 이익을 둔 채 나아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고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과정에 깊숙이 개입된 인간 욕망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선거 민주주의를 넘어 감시 민주주의로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와 유사한 '난세'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국민 개개인의 투표권이라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룡이 나르샤' 속 백성들처럼 수동적으로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쿠데타가 아닌 법적 절차와 민주주의의 힘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선거 민주주의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선거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대의 민주주의는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선출된 권력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국민의 이익이 아닌 사적 욕망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합니다. 이 지점에서 감시 민주주의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감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투명성을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디지털 시대에는 온라인 플랫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감시사회』(2011, 한홍구, 엄기호 외)는 현대 사회에서 감시가 어떻게 일상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감시 시스템 속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주체성을 잃어갈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국가 권력의 감시뿐 아니라 시장의 감시, 그리고 디지털 기술을 통한 감시의 확장을 논하며, 이에 맞서는 시민의 끊임없는 저항과 감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시민 사회 단체, 언론,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 개개인의 끊임없는 감시와 비판은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며, 궁극적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무명의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세력들을 견제하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권력이 바르게 사용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바로 감시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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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민주주의: 우리의 책임과 선택
따라서 다가오는 대선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닙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선거 민주주의와 감시 민주주의가 인간의 욕망과 어떻게 조화 또는 대립하며 나아갈 것인지를 시험하는 중대한 시험대입니다. '육룡이 나르샤'의 인물들이 각자의 신념과 욕망, 그리고 현실적 제약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갔듯, 우리 역시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난세에는 난세의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방향은 결국 개개인의 욕망을 성찰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며, 선거를 통한 주권 행사와 더불어 권력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어렵고, 무관심이 편안함을 줄지라도, 그 편안함이 가져올 미래의 대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용'의 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 '일곱 번째 용'이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