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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실체 없는 불안, 계약의 진화, 그리고 '호황 속 심리 불황'

by silvercrown10 2025. 5. 12.

 

생성형 AI 및 다양한 AI를 이용한 효율성증대에 따른 대가?-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생성형 AI 및 다양한 AI를 이용한 효율성증대에 따른 대가?-구글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AI 기술 발전은 인류에게 막대한 효율성과 편의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실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깊은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신기술 도입 시 겪었던 거부 반응과 유사하면서도, 우리가 맺어온 '계약'의 형태 변화와 결부되어 새로운 차원의 심리적 도전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1. AI 시대, 실체 없는 불안과 기술 거부 반응의 반복

AI 시대의 불안은 흔히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잠재적 가능성, 예측 불가능한 결과 등 실체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AI가 일자리를 대규모로 대체할 것', 'AI가 특정 집단을 차별하거나 통제할 것',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인류에게 해를 끼칠 것'과 같은 우려는 현재 눈앞의 위험이 아닌,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불안입니다.

일본의 도서 '불안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저) 등의 철학적 탐구는 이러한 불안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확실성, 미래의 열려 있음, 혹은 통제할 수 없는 타자(기술, 시스템 등)와의 관계에서 비롯됨을 시사합니다. AI는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과 통제 불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대상이기에, 실체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강렬한 불안감을 유발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역사적으로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어 온 거부 반응과 맥을 같이 합니다.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가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되었고, 초기 철도 도입 시에는 빠른 속도나 미지의 위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존재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에도 프라이버시 침해, 정보 과부하 등의 우려가 뒤따랐습니다. AI 시대의 두려움 역시 기술 발전이 가져올 변화와 잠재적 위협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계심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AI는 그 영향력이 전례 없이 광범위하고 심오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불안의 깊이가 더할 수 있습니다.

2. 계약의 진화: 근대 계약이 만든 세계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계약

인류가 근대 세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계약'은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회 계약론에서부터 시작하여 재산권, 고용, 상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추상적이고 법적인 '계약'은 혈연, 지연 등 전통적인 관계를 넘어선 대규모 협력과 질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근대적 계약은 상호 간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 자본주의 발달과 복잡한 사회 시스템 구축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으로서, 고용주와 근로자로서, 판매자와 소비자로서 수많은 근대적 계약 관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특히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계약, 혹은 '알고리즘과의 비공식적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가입하며, 검색 엔진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의 데이터와 관심을 제공하는 대가로 서비스와 편의를 제공받는 일종의 '계약'입니다. 이 계약은 근대의 법적 계약처럼 명확한 조항을 인지하고 서명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수많은 '이용 약관'이라는 형태로 제시되지만 거의 읽히지 않거나, 혹은 사용 패턴 그 자체로 동의가 갈음되는 암묵적 계약에 가깝습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Homo Deus)'에서 인류가 기아, 질병, 전쟁을 정복한 이후 불멸, 행복, 신성(인간 능력의 확장)을 새로운 목표로 삼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러한 목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최대한의 효율성과 최적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점점 더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되며, 개인의 데이터와 사적인 영역을 제공하고, 심지어 중요한 결정권을 알고리즘에 위임하는 형태의 '계약'을 맺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는 우리의 자율성을 대가로 효율성, 건강, 행복이라는 약속을 구매하는 미래의 계약 형태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미 편리함을 위해 데이터와 주의력을 내어주는 계약을 맺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 나은 삶의 '최적화'를 위해 자율성마저 내어주는 계약을 맺을 가능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3. 새로운 계약의 그림자: 호황 속 심리 불황

근대 계약이 질서와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알고리즘과의 계약'과 '최대 효율성 추구'는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에게 새로운 형태의 불안과 심리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전례 없는 연결성, 그리고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많은 사람이 '호황 속 심리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불안과 뇌적/심리적 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수 연구 인용 종합)

  • 정보 과부하 및 주의력 분산: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알림은 뇌에 과부하를 주며, 집중력 저하, 만성 피로, 의사 결정 피로 등을 유발합니다. 이는 전두엽 기능과 관련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 사회적 비교 및 소외감: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타인의 이상화된 삶을 끊임없이 접하면서 상대적 박탈감, 불안, 우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타인과의 '좋아요' 경쟁,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은 사회적 연결성을 높이는 기술이 역설적으로 소외감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 디지털 중독: 알고리즘은 우리의 관심과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스마트폰, 게임, 소셜 미디어 등에 대한 중독 위험을 높입니다. 이는 뇌의 보상 회로에 영향을 미쳐 현실 세계에서의 만족감 저하, 충동 조절 장애 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 프라이버시 불안 및 감시 공포: 나의 모든 데이터가 수집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인식은 만성적인 불안감과 통제력 상실감을 유발합니다. 이는 편집증적 사고나 불신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 자율성 상실에 대한 불안: 알고리즘의 추천이나 결정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번아웃 및 만성 스트레스: 끊임없는 연결성, 성과에 대한 압박, '항상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무언의 강요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이는 수면 장애, 소화기 질환, 면역력 저하 등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로 나타납니다.
  • 실체 없는 위협에 대한 과도한 몰입: AI의 잠재적 위험 등 불확실한 미래 시나리오에 대한 반복적인 접촉과 논의는 실체 없는 불안을 증폭시키고, 현실적인 대응보다는 비합리적인 두려움에 매몰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심리학, 신경과학, 사회학 연구들은 디지털 기술 사용 패턴, 정보 환경, 사회 구조 변화와 우울증, 불안 장애, 주의력 결핍, 수면 장애 등 다양한 심리 및 신경 질환의 증가 사이의 상관관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외형적으로는 풍요롭고 효율적이지만,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계약'과 '최대 효율성' 추구는 인간 정신에 대한 새로운 압박으로 작용하며 '심리적 불황'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AI 시대의 실체 없는 불안은 과거 기술 변화의 두려움과 맥을 같이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알고리즘과의 계약'과 '최대 효율성 추구'라는 환경 속에서 더욱 복잡하고 심오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물질적 호황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인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호황 속 심리 불황' 현상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계약의 본질과 그로 인한 심리적 영향을 깊이 이해하고, 기술 발전과 인간 정신 건강 사이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시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