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로 불리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선택과 판단에 깊숙이 관여하는 시대. 이 눈부신 기술 혁명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문득 한 세기 가까이 변함없는 원칙으로 투자의 길을 걸어온 워렌 버핏을 떠올립니다. 과연 그의 존재는 AI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본 글은 버핏을 단순히 성공한 투자자가 아닌, AI 시대의 논리와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선 'AI 등외자(AI Outsider)'의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의 독특한 시선과 삶의 방식이 격변하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탐색해 봅니다.
'AI 등외자' -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그림자
'AI 등외자'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는 AI 시스템의 발전 과정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이들입니다. 데이터 접근성의 불균형, 알고리즘의 편향성, 디지털 격차, 그리고 AI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AI 등외자'를 양산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마치 데이터가 착취와 추출의 대상인 '천연자원'처럼 여겨지면서, 데이터 통제권을 가진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불평등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편향된 과거 데이터로 학습한 AI는 기존의 차별을 영속화하고 증폭시키며, 기술 접근성이 낮은 계층은 AI 발전의 혜택에서 더욱 멀어집니다. AI는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며 새로운 경제적 분열을 야기할 잠재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의미의 'AI 등외자'는, AI 시대의 지배적인 논리, 즉 속도, 효율성, 데이터 중심주의, 기술 만능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의식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하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워렌 버핏의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는 AI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과대광고(hype)에 휩쓸리지 않고 인간 고유의 판단력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AI 등외자'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오마하의 현자, 2025년 주주총회에서 '등외자'의 목소리를 내다
2025년 5월, 워렌 버핏이 CEO로서 주재하는 마지막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가 열렸습니다. 기록적인 19,700명 이상의 주주가 참석한 이 자리는 그의 은퇴 발표와 후계자 지명, 기록적인 현금 보유고(3,477억 달러),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날 선 비판("큰 실수", "무역은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등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 총회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AI에 대한 버핏과 경영진의 'AI 등외자'적 시각이었습니다. 보험 부문 부회장 아짓 자인은 AI가 보험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유행하는 트렌드를 쫓는 것"을 경계하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버크셔가 "기회가 구체화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속하게 뛰어들 것"이라며, 현재는 AI를 "조금씩 시험해보는"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정점은 버핏의 발언이었습니다. 그는 "향후 10년간 개발될 모든 AI 기술과 아짓 자인을 맞바꾸지 않겠다"고 단언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신뢰를 넘어, 수십 년간 검증된 인간의 깊이 있는 판단력과 경험을 최첨단 AI 기술보다 우선시하겠다는 강력한 선언이었습니다. 또한 버크셔의 투자 전략 전체를 AI 중심으로 개편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며, 기술 만능주의적 흐름과 명확히 선을 그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AI가 가져올 파괴적 혁신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거리를 두는, 그야말로 'AI 등외자'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본질적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것에는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다는 오랜 투자 원칙을 AI에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버핏의 습관: '등외자'의 깊이 있는 삶
버핏의 'AI 등외자'적 면모는 그의 투자 철학뿐 아니라, 일상의 습관과 삶의 방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고독한 독서광, 깊은 사색가:
그는 하루 시간의 대부분, 혹은 근무 시간의 80%를 독서에 할애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신문, 보고서, 재무제표는 물론 역사, 전기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지식을 복리처럼 쌓아갑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그는 복잡한 회의 대신 조용한 사무실에서 홀로 읽고 사색하며 전략을 숙고합니다. 이는 끊임없는 연결과 멀티태스킹을 강요하는 디지털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버핏은 "나는 읽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업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충동적인 결정을 덜 내린다"고 말하며, 이러한 '아날로그'적 습관이 깊이 있는 판단력의 원천임을 시사합니다.
가치 투자, 역발상의 철학:
"다른 사람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라". 시장의 집단 심리와 반대로 행동하려는 그의 의지는 월스트리트의 단기주의와 유행 추종 경향, 그리고 동종 업계의 행동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제도적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기업의 내재 가치라는 본질에 집중하며, 시장의 소음에는 귀를 닫습니다. 이러한 독립적인 지적 프레임워크 자체가 그를 주류에서 벗어난 'AI 등외자'로 만듭니다.
단순함의 미학:
1958년에 구입한 집에 여전히 살고, 불필요한 사치를 피하는 그의 검소함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넘어, 복잡성을 줄이고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는 정보 과잉과 끊임없는 선택의 압박 속에서 의사결정의 피로도를 낮추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버핏의 이러한 습관들은 칼 뉴포트가 말한 '깊은 작업(Deep Work)', 즉 인지적으로 까다로운 작업에 방해 없이 집중하는 능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보 과부하와 AI로 인한 인지적 부담 전가(cognitive offloading)의 위험이 커지는 시대에, 그의 'AI 등외자'적 집중력과 깊은 사고방식은 오히려 강력한 경쟁력이 됩니다.
삶이라는 데이터, AI 시대의 역사적 가치
워렌 버핏의 수십 년간의 주주 서한과 그의 삶을 기록한 전기 《스노우볼》 등은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AI 시대에 독특한 가치를 지니는 풍부한 '데이터셋'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그의 투자 철학, 의사결정 과정, 가치관의 일관성과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질적, 종단적 데이터입니다.
AI는 방대한 양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패턴을 찾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지만, 버핏의 '데이터'가 담고 있는 깊은 인간적 맥락, 윤리적 고민, 장기적 통찰, 그리고 그의 내면적 복잡성은 현재 AI가 완벽히 이해하거나 복제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성공은 숫자를 넘어선 경영진의 자질, 기업 문화, 윤리 등 질적 판단을 통합하는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데, 이는 AI의 패턴 인식과는 다른 차원의 지혜입니다.
물론, 한 인간의 삶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단순화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그의 성공 방식이 미래에도 유효할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AI는 과거 데이터에 기반하기에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 변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라는 '데이터'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판단력과 가치, 그리고 시대 변화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원칙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역사적 교훈을 제공합니다.
'AI 등외자' 버핏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워렌 버핏은 AI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배제된 'AI 등외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철학과 습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그를 AI 시대의 주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독특한 'AI 등외자'로 만듭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보여주는 비판적 사고, 장기적 관점, 본질에 대한 집중, 윤리적 기반, 그리고 인간 판단력에 대한 존중은 AI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AI가 가져올지 모를 인지적 부담 전가, 단기적 최적화의 함정, 알고리즘 편향, 비인간화의 위험 속에서 그의 'AI 등외자'적 접근 방식은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AI 등외자' 워렌 버핏의 사례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키고 추구해야 하는가? 효율성과 속도만이 능사인가? AI가 만들어낼 새로운 'AI 등외자'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주체성과 윤리적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버핏이 보여준 것처럼, 세상과의 깊고 진실한 관계 맺기, 끊임없는 학습과 사색을 통해 얻는 지혜, 그리고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고독한 용기야말로 AI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나침반일지도 모릅니다. AI는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지혜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AI 등외자'의 시선은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 줍니다.